“지난 30여 년, 꺾인 꽃처럼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아이들을 지키고, 짓밟힌 저의 인생을 되찾기 위해, 이 어둡고 긴 터널을 헤쳐나가려 합니다. 법의 엄정한 심판에 감사드립니다.”
2024년 5월 30일. 대한민국 사법 역사에 한 획을 긋는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서울고등법원은 SK그룹 최태원 회장에게, 그의 아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재산 분할로 1조 3,808억 원, 위자료로 20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이혼 재산 분할 액수. 하지만 이 숫자는 단순한 돈의 액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한 재벌 총수의 아내로, 그리고 전직 대통령의 딸로 살며 겪어야 했던 35년간의 배신과 설움, 그리고 마침내 법으로부터 자신의 기여를 인정받은 한 여성의 눈물겨운 승리의 증표였습니다.
남편은 공개적으로 다른 여자와 아이가 있다고 고백하며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세상은 그녀를 ‘비운의 조강지처’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청춘과 아버지의 후광이 남편의 성공에 어떤 밑거름이 되었는지를 증명하기 위한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한 재벌가의 이혼 스캔들을 넘어, 시대의 비극과 개인의 아픔이 교차하는 한 편의 대하드라마입니다.
💍 정략결혼이라는 편견, 그 시작과 진실
1988년, 청와대 영빈관. ‘재벌가의 아들’과 ‘현직 대통령의 딸’이 화촉을 밝혔습니다. SK그룹의 전신인 선경그룹 최종현 회장의 장남 최태원과, 당시 6공화국 노태우 대통령의 딸 노소영. 세상은 이 결혼을 두고 ‘권력과 재벌의 결합’이라며 ‘정략결혼’이라는 꼬리표를 붙였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미국 시카고 대학 유학 시절에 만나 서로를 ‘소니’, ‘대니’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자유롭게 연애했습니다. 노소영 관장은 훗날 “정략결혼이라는 말이 너무 싫었다”며,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아버지도 남편을 아들처럼 아꼈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소탈하고 겸손한 모습에 반했고, 재벌가의 며느리이자 대통령의 딸이라는 무거운 왕관을 쓴 채 결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결혼 후 그녀는 철저히 자신을 낮추고 남편의 그림자가 되었습니다. 세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시어머니를 봉양하며 평범한 며느리의 삶을 살았습니다. 남편이 1998년 갑작스럽게 회장직을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남편이 2003년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되었을 때는 매일같이 교도소를 찾아가 옥바라지를 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기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습니다.
바로 아버지, 노태우 대통령의 후광이었습니다. 1990년대 초, 선경그룹은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었습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존재가 SK그룹(당시 선경)이 이동통신 사업에 진출하고, 오늘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통신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법원은 훗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 원가량이 SK 측으로 흘러 들어간 정황까지 인정했습니다.
“아버지의 역할, 그리고 제가 그 딸이라는 사실이 SK의 성장에 무형의 기여를 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그 누구도 그런 기여를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배경과 인맥을 동원해 남편의 사업을 도왔습니다. 그것은 ‘아트센터 나비’를 운영하며 문화적 소양을 쌓는 것을 넘어, 남편이 이끄는 제국을 지키기 위한 보이지 않는 내조였습니다.
💔 “나에게 다른 여자와 아이가 있습니다” - 가장 잔인한 고백
평화롭던 그녀의 삶은 2015년 12월, 한 통의 편지로 산산조각 났습니다. 남편 최태원 회장이 언론사에 보낸 공개서한. 그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노소영 관장과 10년 넘게 깊은 골을 사이에 두고 지내왔고, 새로운 사람과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이제 노 관장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제 잘못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세상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남편이 다른 여성(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과 오랫동안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왔고, 혼외자까지 있다는 사실을, 아내인 노소영은 언론 보도를 통해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아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저버린,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공개적인 이혼 요구였습니다.
그녀는 처음에는 가정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모든 것이 내 불찰”이라며 “아이들의 아빠를 욕하지 말아달라”고 대중에게 호소했습니다. 혹시라도 남편이 돌아올까, 가정을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마음은 이미 돌아선 뒤였습니다. 그는 2017년, 노 관장을 상대로 이혼 조정을 신청했습니다.
- 완벽한 기만: 남편은 수년간 두 집 살림을 하며 아내와 대중을 완벽하게 속여왔습니다.
- 공개적인 망신: 혼외자 사실을 편지로 공개하며, 아내에게 회복할 수 없는 모욕감을 안겨주었습니다.
- 가정의 파괴: 남편의 외도로 인해 세 자녀는 깊은 상처를 입었고, 가정은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결국 2년간의 조정 끝에, 그녀는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2019년 이혼에 동의하며 맞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요구는 단순한 위자료 청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남편의 SK 주식 50%를 분할해달라”는, 자신의 기여를 정당하게 인정해 달라는 선전포고였습니다.
⚖️ 665억 vs 1조 3800억, 정의를 되찾은 2심 재판부
1심 재판부의 판결은 참담했습니다. 2022년, 서울가정법원은 “노 관장의 기여가 SK 주식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며, 최 회장의 주식을 ‘특유재산’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위자료 1억 원과 현금 665억 원만을 재산 분할로 인정했습니다. 35년간의 헌신과 아버지의 후광이 단 665억 원으로 평가절하된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노소영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즉각 항소했고, 2심 재판부에서 반격의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2024년 5월 30일, 서울고등법원은 1심 판결을 완전히 뒤집는 역사적인 판결을 내놓습니다.
재판부는 최태원 회장의 SK 주식을 ‘부부 공동재산’으로 인정했습니다.
그 근거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재판부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종현 전 회장의 보호막이나 방패막이 역할을 하며 결과적으로 (SK그룹의) 성공적 경영 활동에 무형적 도움을 줬다고 판단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즉, 노소영 관장의 아버지인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이 SK그룹의 성장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음을 사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약 300억 원이 SK그룹에 유입된 정황도 인정하며, 노소영 관장이 단순히 재벌가의 며느리가 아닌, SK그룹의 가치 형성과 성장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재산 분할 비율을 65(최태원) 대 35(노소영)로 정하고, 그 결과로 1조 3,808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를 산정했습니다. 위자료 역시 남편의 장기간의 부정행위와 비신사적인 태도를 질타하며 1심의 20배인 20억 원으로 상향했습니다.
이 판결은 한 여성의 명예를 회복시킨 것을 넘어, 재벌가의 재산 분할 소송에서 배우자의 비금전적, 내조의 기여를 전례 없이 폭넓게 인정한 역사적인 판례로 남게 되었습니다. 35년간의 설움과 눈물이, 마침내 사법부의 정의로운 판결로 보상받는 순간이었습니다.
📜 판례 해설
본 콘텐츠는 2024년 5월에 있었던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항소심 판결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이 판결은 재산 분할 액수(1조 3,808억 원)가 국내 이혼 소송 사상 최고액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그 판단 근거에서 중요한 법적 의미를 가집니다.
항소심 재판부(서울고법 가사2부)는 1심과 달리 최태원 회장의 SK(주) 주식을 부부 공동 노력으로 형성된 공동재산으로 판단했습니다. 그 핵심 근거는 노소영 관장의 부친인 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역할이었습니다.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의 유무형적 지원(예: 제2이동통신 사업권 획득 과정에서의 방패막이 역할, 비자금 유입 등)이 SK그룹의 성장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보고, 이는 곧 노소영 관장을 통한 기여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혼인 기간 중 배우자 한쪽 부모의 사회·정치적 배경이나 지원이 부부 공동재산 형성에 기여한 바를 이례적으로 폭넓고 구체적으로 인정한 판례입니다. 이 판결로 인해 향후 재벌가나 사회 고위층의 이혼 소송에서 ‘특유재산’의 개념과 ‘내조의 기여’ 범위에 대한 중요한 법적 기준점이 제시되었습니다. (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앞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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