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함께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시절부터, 저는 그의 비전을 믿고 제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성공의 정점에서, 그는 저를 단지 돈을 요구하는 전처로 만들려 했습니다. 이것은 제 역사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1997년, 미국 시애틀의 한 법정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단순히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가 증인석에 앉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친구이자 미국 통신 산업의 거물, 크레이그 맥코의 이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것이었습니다. 크레이그 맥코는 21년간 함께 무선 통신 제국 ‘맥코 셀룰러(McCaw Cellular)’를 건설한 아내, 웬디 맥코와 이혼 소송 중이었습니다.
웬디가 최종적으로 받게 된 금액은 약 4억 6천만 달러(당시 한화 약 5천억 원). 워싱턴 주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이혼 합의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숫자는 승리의 징표라기보다, 한 여성이 자신이 공동 창업한 제국에서 자신의 지분을 인정받기 위해 얼마나 처절하게 싸워야 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처의 기록이었습니다. 남편은 우정까지 동원해 재산을 지키려 했고, 그녀는 자신의 21년 헌신이 헐값에 팔려나가는 것을 막아야 했습니다.
📱차고에서 시작된 꿈, 통신 제국의 공동 창업자
1974년, 스탠퍼드 대학 동창이었던 크레이그와 웬디는 결혼했습니다. 당시 크레이그는 아버지가 남긴 작은 케이블 TV 회사를 운영하는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웬디는 그의 비전을 보았고, 그와 함께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녀는 단순한 ‘사장의 아내’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맥코 셀룰러의 명백한 공동 창업자(Co-founder)이자 핵심 파트너였습니다.
두 사람은 작은 차고에서 시작해, 훗날 미국 최대의 무선 통신 사업자가 될 제국의 밑그림을 함께 그렸습니다.
- 초기 자본 조달: 웬디는 회계 장부를 관리하고, 은행을 직접 찾아다니며 사업 초기의 절실했던 대출을 협상했습니다. 그녀의 신뢰감 있는 태도는 은행가들을 설득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 경영 참여: 그녀는 회사의 이사회 멤버로서 주요 의사 결정에 참여했으며, 회사의 성장 전략을 함께 고민했습니다.
- 궂은일 담당: 사업 초기, 그녀는 회계, 법률 서류 작업, 심지어 사무실 청소까지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말 그대로 제국의 벽돌 하나하나를 남편과 함께 쌓아 올렸습니다.
“사람들은 크레이그를 천재적인 선지자라고 부릅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 비전이 현실이 되기까지, 그 뒤에는 저의 땀과 노력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팀이었고, 맥코 셀룰러는 우리 두 사람의 아이였습니다.”
두 사람의 노력 끝에, 맥코 셀룰러는 미국 전역을 아우르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1994년, 두 사람은 회사를 AT&T에 115억 달러(당시 약 13조 원)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에 매각하며 돈방석에 앉게 됩니다. 모든 고생이 끝나고, 이제 행복을 누릴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성공은, 역설적으로 21년간의 파트너십에 종말을 고하는 신호탄이었습니다.
💔 13조 원의 성공, 그리고 빌 게이츠가 앉은 증인석
AT&T와의 매각으로 막대한 현금을 손에 쥐게 된 후, 크레이그는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요트와 개인 제트기를 사들이며 화려한 생활에 빠져들었고, 웬디와의 사이는 점점 멀어졌습니다. 결국 1995년, 크레이그는 웬디에게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이혼의 가장 큰 쟁점은 재산 분할이었습니다. 그들의 재산은 약 13억 달러로 추정되었습니다. 워싱턴 주는 부부가 결혼 기간 동안 이룬 재산을 동등하게 나누는 ‘부부공동재산(Community Property)’ 주입니다. 법적으로, 웬디는 재산의 절반인 약 6억 5천만 달러를 받을 권리가 있었습니다. 21년간 제국을 함께 건설한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였습니다.
하지만 크레이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변호인단을 통해 웬디의 기여를 깎아내리고, 재산을 최대한 적게 분할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카드를 꺼내 듭니다.
바로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사업 파트너, 빌 게이츠를 증인으로 신청한 것입니다.
세계 최고의 부호 빌 게이츠가 법정에 나타나자, 재판은 한순간에 세기의 구경거리로 변했습니다. 빌 게이츠는 마지못해 증인석에 앉아, 자신과 크레이그 사이에 있었던 ‘악수 한 번으로 맺어진 구두 계약’에 대해 증언해야 했습니다. 크레이그 측은 이 증언을 통해, AT&T 매각 이후의 사업 자산 가치를 복잡하게 만들고, 웬디에게 돌아갈 몫을 줄이려는 전략을 사용한 것입니다. 웬디에게는 참을 수 없는 배신이었습니다.
“남편이 빌 게이츠를 법정으로 끌어들였을 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에게 저는 더 이상 21년간 함께한 동반자가 아니라는 것을요. 그는 저를 이기기 위해, 우리의 우정까지 이용했습니다. 법정은 전쟁터가 되었고, 저는 제 모든 것을 걸고 싸워야만 했습니다.”
남편은 세계 최고의 부호를 자신의 편으로 내세웠고, 웬디는 철저히 혼자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변호인단과 함께, 맥코 셀룰러의 초기 역사부터 자신의 기여를 하나하나 입증해 나갔습니다. 이것은 돈을 위한 싸움을 넘어, 자신의 역사를 부정당하지 않으려는 한 여성의 자존심을 건 싸움이었습니다.
📜 4억 6천만 달러, 쟁취해낸 창업자의 권리
2년간의 치열한 법정 다툼 끝에, 1997년 마침내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웬디는 최소 4억 6천만 달러에 달하는 재산을 분할받았습니다. 이 금액은 그녀가 법적으로 주장했던 절반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당시 워싱턴 주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이혼 합의금이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합의가 그녀의 기여를 인정한 결과물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압박과 빌 게이츠라는 거대한 증인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자신이 공동 창업자로서 누려야 할 정당한 권리를 쟁취해 낸 것입니다. 그녀는 이혼 합의서에 서명하며 21년간의 결혼 생활뿐만 아니라, ‘팀 윈’으로서의 파트너십에도 공식적인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이혼 후, 웬디는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합의금으로 받은 돈의 일부로 캘리포니아의 유력 신문사인 ‘산타바바라 뉴스-프레스’를 인수하여 언론사 사주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누군가의 아내나 동업자가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세상을 마주했습니다.
웬디 맥코의 이야기는 성공 신화의 이면에 숨겨진 배신과 투쟁의 기록입니다. 함께 꿈을 꾸고 제국을 건설했지만, 성공의 정점에서 버림받은 한 여성이 어떻게 자신의 권리를 되찾고 다시 일어서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빌 게이츠의 증언조차 막을 수 없었던 그녀의 의지는, ‘조강지처’이자 ‘공동 창업자’의 위대한 힘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 판례 해설
본 콘텐츠는 1997년에 마무리된 크레이그 맥코와 웬디 맥코의 이혼 사례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워싱턴 주 법원에서 진행되었으며, 최종적으로 재판까지 가지 않고 양측의 합의로 종결되었습니다. 합의금은 최소 4억 6천만 달러로, 당시 워싱턴 주 역사상 최고액의 이혼 재산 분할 기록이었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 법적 쟁점은 ‘부부공동재산(Community Property)’의 분할이었습니다. 워싱턴 주는 부부가 혼인 기간 중 함께 노력하여 형성한 재산은 이혼 시 원칙적으로 50:50으로 분할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웬디 맥코는 맥코 셀룰러의 창업 초기부터 회사의 성장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공동 창업자’로서, 회사 매각 대금의 절반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습니다.
크레이그 맥코 측이 빌 게이츠를 증인으로 신청한 것은, 매각 이후의 자산 가치를 둘러싼 복잡한 논쟁을 만들어 분할 대상 재산을 줄이려는 법적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됩니다. 최종 합의 금액은 웬디의 법적 권리인 50%에는 미치지 못했을 수 있으나, 그녀의 기여도를 상당 부분 인정한 결과로 평가됩니다.
이 이야기는 공개된 언론 보도와 기록 등을 바탕으로 당사자의 심리 상태와 사건의 배경을 드라마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며, 특정 인물에 대한 비방의 목적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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