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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소송 12 “베트남으로 꺼져!” 남편의 폭언, 제 코리안드림은 지옥이었습니다

"네 나라로 꺼져 버려! 돈 보고 온 주제에!"

그날도 남편의 고함은 비수처럼 날아와 심장에 박혔습니다. 갓 돌이 지난 아이가 놀라 울음을 터뜨렸지만, 남편의 분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서툰 한국말로 제발 그만하라고 애원하는 제 멱살을 잡아채 벽으로 밀어붙였습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세상이 잠시 하얗게 보였습니다. 낯선 땅, 대한민국에서 꿈꿨던 행복한 가정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코리안드림은 산산조각 나 지옥의 파편이 되어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사진-베트남여성
코리안 드림

🌸 꿈을 안고 온 낯선 땅, 대한민국

제 이름은 '란'입니다. 베트남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저는 언제나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아름다운 사랑과 행복한 가정을 꿈꿨습니다. 중매를 통해 만난 남편은 비록 나이가 조금 많았지만, 서글서글한 인상에 저와 제 가족에게 정말 잘하겠다고, 한국에 오면 호강시켜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을 믿고 정든 고향과 가족을 떠나 머나먼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웠지만, 남편만 믿었습니다. 처음 몇 달은 정말 꿈만 같았습니다. 함께 장을 보고, 서툰 솜씨로 한국 음식을 만들어주면 맛있다며 엄지를 치켜세워 주던 사람이었습니다. 곧 예쁜 아이도 생겼습니다. 이 아이와 함께라면, 이 사람과 함께라면 이곳에서 뿌리내리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신기루처럼 짧았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생활이 팍팍해지기 시작하면서, 남편은 조금씩 변해갔습니다.

🌪️ 지옥으로 변한 나의 집

시작은 사소한 짜증이었습니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트집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점점 그의 입에서는 칼날 같은 말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너 같은 게 뭘 안다고! 그냥 밥이나 해!"

"네가 한국 남자랑 결혼한 게 얼마나 행운인 줄 알아? 돈만 보고 온 주제에!"

 

가장 가슴을 후벼 팠던 말은 "네 나라, 베트남으로 꺼져 버려!"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은 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사랑해서 온 이 나라에서, 제 모든 것을 걸고 만든 가정에서 저는 이방인이었고, 돈에 팔려 온 여자일 뿐이었습니다. 밤마다 아이를 끌어안고 소리 죽여 울었습니다. 남편은 밖으로 나도는 날이 잦아졌고, 종종 도박에 손을 댄다는 흉흉한 소문도 들려왔습니다.

 

언어폭력은 이내 신체적 폭력으로 이어졌습니다. 제가 그의 말을 조금이라도 거역하거나, 돈 문제로 다투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손이 날아왔습니다. 그가 제 멱살을 잡고 밀쳤을 때, 저는 단순한 신체적 고통이 아니라 영혼이 살해당하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아이는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모습을 보며 공포에 질려 울기만 했습니다. 이 아이에게 더 이상 지옥 같은 환경을 보여줄 수는 없었습니다.

결심했습니다. 이 집을 나가야겠다고. 저 자신과, 무엇보다 이 어린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 아이의 손을 잡고, 나는 도망쳤다

그날 새벽, 남편이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조용히 짐을 쌌습니다. 아이의 기저귀 몇 개, 옷가지, 그리고 베트남에서 가져온 낡은 가족사진이 전부였습니다. 갈 곳도, 아는 사람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저 이 집만 벗어나면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이의 작은 손을 꼭 잡고 어둠 속으로 나서는 제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습니다. 두려움과 막막함, 그리고 내 아이만은 지키겠다는 처절한 모성애가 뒤섞여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이주여성 지원센터의 도움으로 간신히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법률 구조 공단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은 상담사님은 함께 눈물을 흘려주셨고, 이혼 소송을 도와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용기를 내어 남편을 상대로 이혼 및 위자료, 재산분할, 그리고 아이의 양육권을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 차가운 법정, 또 다른 싸움

법정에서의 싸움은 또 다른 지옥이었습니다. 남편은 법정에서 제가 먼저 가출했고,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했습니다. 폭행 사실에 대해서는 '사랑해서 그런 것',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습니다.

  • ✔️ "아내가 한국말도 잘 못 하고, 제 말을 오해해서 다툼이 있었을 뿐입니다."
  • ✔️ "멱살을 잡은 건 인정하지만, 심하게 때린 적은 없습니다. 홧김에 그랬습니다."
  • ✔️ "아이가 엄마만 따르는데, 제가 어떻게 폭력을 행사했겠습니까? 모두 거짓말입니다."

그의 뻔뻔한 거짓말에 온몸이 떨렸습니다. 제가 겪었던 공포와 수모의 시간들이 그의 몇 마디 변명으로 축소되고 왜곡되는 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몰래 녹음했던 그의 폭언과 병원에서 발급받은 진단서를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제발, 재판장님이 제 고통을 알아주시길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 눈물의 판결: "내 상처의 가치는 고작 800만 원인가요?"

길고 지루한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재판부는 남편의 폭언과 폭행 사실을 인정하고, 혼인 관계 파탄의 책임이 남편에게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이혼 청구는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토록 원했던, 아이의 친권자와 양육자로 저를 지정해주었습니다. 남편은 매달 40만 원의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판결도 내려졌습니다. 재산분할로는 3,500만 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저는 겨우 이겼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위자료 액수를 듣는 순간, 저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위자료 800만 원.

800만 원. 제가 낯선 땅에서 겪어야 했던 수년간의 설움과 공포, "꺼져 버려"라는 말을 들으며 짓밟혔던 자존심, 멱살을 잡히며 느꼈던 죽음의 공포, 그리고 산산조각 난 제 인생의 가치가 고작 800만 원이라는 사실에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법은 제 편인 것 같았지만, 결국 제 상처의 깊이를 온전히 헤아려주지는 못했습니다.

 

판결문을 들고 법원을 나서는데 허탈한 웃음이 나왔습니다. 저는 이혼을 했고, 아이를 지켰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 깊은 상처는 전혀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법이 인정한 제 고통의 대가는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어쩌면 제 코리안드림의 잔해는, 그 가격표가 붙은 채 영원히 제 가슴에 박혀 있을지도 모릅니다.


판례 해설

위 이야기는 2022년 광주가정법원 순천지원의 이혼 등 판결을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이 판례는 국제결혼 가정 내에서 발생한 가정폭력과 부당한 대우가 명백한 이혼 사유가 됨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법원은 피고(남편)가 원고(베트남 아내)에게 "베트남으로 가라"는 등 출신 국가를 비하하는 모욕적인 발언을 하고, 멱살을 잡는 등 폭력을 행사한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이는 민법 제840조 제3호에서 정한 이혼 사유인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양육권 판단입니다. 법원은 사건본인(자녀)의 나이가 어리고, 그동안 어머니인 원고가 주된 양육을 해온 점, 그리고 원고의 양육 의지가 강한 점 등을 고려하여 원고를 친권자 및 양육자로 지정했습니다. 이는 자녀의 복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법원의 입장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다만, 위자료 액수(800만 원)에 대해서는 많은 분이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법원은 혼인 기간, 파탄 경위, 당사자의 나이, 재산 상태 등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위자료를 산정합니다. 피해자가 겪은 정신적 고통을 금전으로 완전히 환산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판결로 인정되는 위자료 액수가 피해자의 실제 고통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 이 글은 실제 판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물이며,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 등은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것입니다.
법률적인 문제나 구체적인 상담은 반드시 변호사 등 법률 전문가와 직접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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