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님... 저 여자는 제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렸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아무 잘못도 없는 제가 이 결혼을 끝내줘야만 합니까? 저 사람 손에 제 인생이 끝나는 건... 너무 억울합니다."
싸늘한 법정, 피고석에 앉은 아내 서연의 목소리는 절박하게 떨렸습니다. 맞은편 원고석에 앉은 남자, 10년 전만 해도 세상의 전부였던 남편 민준은 이제 다른 여자의 남자가 되어 그녀에게 이혼을 강요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부정행위로 가정을 파탄 내놓고, 이제는 법의 힘을 빌려 자신을 내쫓으려는 그의 뻔뻔함에 서연은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재판이혼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10년간의 헌신과 배신, 그리고 짓밟힌 한 여자의 마지막 자존심을 건 처절한 싸움이었습니다.

✨ 반짝이던 우리의 시작, 모든 것을 바쳤던 사랑
서연과 민준의 사랑은 한 편의 영화 같았습니다. 풋풋한 캠퍼스 커플로 만나 7년의 열애 끝에 결혼한 두 사람. 경기도의 작은 신혼집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미래를 속삭이던 날들을 서연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민준은 세상 다정했고, 서연은 그런 그를 하늘처럼 믿고 사랑했습니다. 그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민준이 작은 인테리어 사업을 시작했을 때, 서연은 자신의 전공을 살려 운영하던 작은 디자인 스튜디오를 망설임 없이 정리했습니다. 남편의 성공이 곧 자신의 행복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밤늦게까지 사무실 경리 업무를 보고, 직원들의 야식을 챙기고, 거래처 사람들의 경조사까지 제 일처럼 챙겼습니다. 그녀의 헌신 덕분이었을까요? 민준의 사업은 날로 번창했습니다. 작은 빌라에서 시작한 살림은 곧 서울 근교의 마당 있는 예쁜 단독주택으로 옮겨갔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소희'도 태어났습니다. 서연은 이 행복이 영원할 것이라 굳게 믿었습니다. 남편의 넥타이를 매어주며 출근길을 배웅하고, 딸아이의 손을 잡고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평범한 일상이 세상 가장 큰 축복이었습니다.
💔 의심의 그림자, 서서히 금이 가던 행복
언제부터였을까요. 완벽해 보였던 행복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사업이 안정궤도에 올랐다면서도 민준의 귀가는 점점 늦어졌습니다. 잦은 회식과 지방 출장을 핑계 대는 날이 늘어갔고, 그의 옷에서는 낯선 향수 냄새가 희미하게 배어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단 한 번도 잠근 적 없던 그의 휴대폰에 어느 날부터 복잡한 패턴의 잠금장치가 걸렸습니다.
"소희 아빠, 요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안색이 안 좋아 보여."
걱정스레 건넨 서연의 말에, 민준은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습니다.
"사업하는 사람이 스트레스받는 게 당연하지, 뭘 안다고 그래. 당신은 그냥 집에서 소희나 잘 돌봐. 그게 당신 일이야."
가슴에 찬바람이 스몄습니다. '당신 일'. 한때는 모든 것을 함께하는 '우리 일'이었는데, 어느새 선이 그어져 있었습니다. 주말이면 소파와 한 몸이 되어 TV만 보는 남편, 부부 사이의 대화는 점점 줄어들고 집안에는 어색한 침묵만이 감돌았습니다. 서연은 애써 불안감을 짓눌렀습니다. '남자들이 밖에서 일하다 보면 힘들어서 그럴 수 있어. 내가 더 잘해야지. 이 시기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그녀는 그렇게 스스로를 수없이 속이고 또 속였습니다.
🔥 잔인한 진실, 모든 것이 무너지던 그날 밤
소희의 일곱 번째 생일날이었습니다. 서연은 아침부터 딸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들로 생일상을 차리느라 분주했습니다. 민준은 "오늘만큼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칼퇴근해서 소희랑 놀아줄게!"라고 신신당부를 한 터였습니다. 하지만 저녁 8시, 9시, 10시… 약속했던 그는 오지 않았고, 전화기는 차갑게 꺼져있었습니다. 케이크 위의 촛농이 굳어갈 때쯤, 소희는 아빠를 기다리다 지쳐 소파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새벽 2시가 넘어 현관문이 열렸습니다. 비틀거리며 들어선 민준에게서는 짙은 술 냄새와 함께 서연의 것이 아닌, 너무나도 선명하고 달콤한 여자의 향수 냄새가 풍겼습니다. 서연의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더 이상은 참을 수도, 모른 척할 수도 없었습니다.
"당신... 도대체 어디서 뭘 하다 이제 기어들어오는 거야! 오늘이 무슨 날인지나 알아?"
울음과 분노가 뒤섞인 서연의 절규에, 민준은 기다렸다는 듯,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그래, 잘 됐다. 나도 더는 이렇게 못 살겠어. 나 사랑하는 여자 생겼다. 그 여자랑 새로 시작하고 싶어. 우리, 이혼하자."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멎었습니다. 혼인 파탄의 책임이 100% 자신에게 있는 그의 입에서 나온 '이혼'이라는 단어는, 서연의 지난 10년 세월을 산산조각 내는 망치였습니다. 그가 사랑한다는 여자는 사업 파트너로 만난 디자이너였고, 이미 2년 넘게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서연이 가정을 지키고 그의 성공을 위해 헌신하는 동안, 그는 다른 여자와 은밀한 사랑을 속삭이며 새로운 가정을 꿈꾸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로 민준은 짐을 싸 집을 나갔고, 보란 듯이 상간녀와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생활비와 양육비는 끊겼고, 서연과 소희는 하루아침에 버려졌습니다. 서연은 배신감과 절망에 며칠을 앓아누웠지만, 이내 독한 오기가 그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내가 왜? 이 결혼을 지옥으로 만든 건 당신인데, 왜 당신 마음대로 끝내야 하지? 절대로, 당신 뜻대로는 안 돼.'
⚖️ 적반하장 이혼소송, 법정에 선 배신자
그 후로 몇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서연은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꾸리고 소희를 키웠습니다. 민준에게서는 가끔 변호사를 통해 이혼 조건이 담긴 합의서만 날아왔습니다. 서연은 번번이 그 서류를 찢어버렸습니다. 그녀는 이혼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유책배우자인 민준이 청구하는 이혼에 응해줄 마음이 추호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짓밟힌 청춘과 딸의 상처를 너무 쉽게 용서해 주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민준은 최후의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법원에서 날아온 소장. 원고 남편 민준, 피고 아내 서연. 자신의 외도와 가출이라는 핵심적인 이혼 사유는 쏙 빼놓은 채, '수년간의 별거로 혼인 관계는 이미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파탄 났으니 이혼하게 해 달라'는 기가 막힌 내용이었습니다.
법정에서의 시간은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습니다. 민준의 변호사는 서연을 이렇게 공격했습니다.
- "피고는 이미 실질적으로 끝난 혼인 관계에 비이성적으로 집착하고 있습니다. 이는 원고에게 고통을 주려는 오기와 보복적인 감정일 뿐입니다."
- "원고에게는 새로운 상대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미 파탄 난 결혼 생활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양 당사자 모두에게 불행입니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파탄주의를 적용하여 이혼을 명해주시길 바랍니다."
- "원고가 혼인 파탄에 일부 책임이 있다 하더라도, 관계 회복이 불가능한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서연은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습니다. 나의 고통, 나의 눈물, 소희의 상처는 그들에게 한낱 '비이성적인 집착'일뿐이었습니다. 서연의 변호사는 대한민국 민법의 대원칙을 들어 강력하게 맞섰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 혼인을 파탄에 이르게 한 장본인은 명백히 원고입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가정을 버리고 떠난 유책배우자가 이제 와서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이혼을 요구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행위입니다. 만약 법원이 이를 허용한다면, 앞으로 누가 배우자를 믿고 가정을 지키려 하겠습니까? 이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면죄부를 주고, 선량한 배우자를 내쫓는 축출이혼을 용인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피고는 이혼을 거부함으로써 혼인 제도의 신성함과 자신의 마지막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 대법원의 최종 판결, 그리고 남겨진 상처
1심과 2심 법원은 모두 서연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혼인 파탄의 주된 책임이 있는 유책배우자 민준의 이혼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민준은 포기하지 않고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그는 시대가 변했으니 이제 우리 법원도 파탄주의를 전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며 여론전까지 펼쳤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운명의 날.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서연은 떨리는 손으로 판결문을 받아 들었습니다. 결과는 그녀의 최종 승리였습니다. 대법원은 혼인 생활의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원칙적으로 그 파탄을 사유로 하여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기존의 유책주의 법리를 다시 한번 명확히 확인해주었습니다.
법원 계단에 주저앉은 서연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기쁨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길고 길었던 싸움의 끝에서 찾아온 허탈함과, 돌이킬 수 없는 세월에 대한 서러움이었습니다. 법은 그녀의 편이었지만, 그녀의 상처받은 마음과 사라져 버린 청춘, 아빠 없는 아이로 자라난 딸의 상처까지 치유해주지는 못했습니다.
승소했지만, 진정으로 이긴 것은 아무것도 없는 싸움. 다만 한 가지, 자신을 배신한 남편의 손에 의해 자신의 인생이 함부로 결정되는 최악의 상황만큼은 막아냈다는 것. 그것이 서연이 10년의 눈물로 얻어낸 유일한 위안이었습니다.
판례 해설: 유책주의 vs 파탄주의
위 이야기는 대법원 2015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바탕으로 각색한 것입니다. 이 판결은 대한민국 이혼법의 근간을 이루는 두 가지 원칙, '유책주의'와 '파탄주의'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을 명확히 보여준 매우 중요한 판례입니다.
📌 유책주의(有責主義)란 무엇인가?
유책주의란, 말 그대로 '책임이 있는 사람' 즉, 유책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원칙입니다. 바람을 피우거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악의적으로 가정을 유기하는 등 결혼을 망가뜨린 장본인은 "나 이혼할래"라고 법원에 요구할 자격이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 대법원은 이 유책주의를 이혼 재판의 대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판결의 핵심 요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유책주의 원칙 재확인: 대법원은 잘못을 저지른 배우자가 자신의 필요에 의해 잘못 없는 배우자를 내쫓는 '축출이혼'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기존의 입장을 확고히 했습니다. 이는 배우자에 대한 신의와 혼인 제도의 도덕성을 지키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 예외적 허용 가능성: 다만, 유책주의를 기계적으로 적용할 때의 문제점도 고려했습니다. 상대방 배우자 역시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전혀 없으면서, 오직 상대방에게 고통을 줄 목적으로 오기나 보복적인 감정에서 이혼을 거부하는 경우 등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도 허용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서연의 경우, 그녀는 진심으로 가정을 지키고자 했으므로 이 예외에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 사회적 의미: 이 판결은 '잘못한 사람은 이혼을 요구할 수 없다'는 사회적 정의와 상식을 법이 보호하겠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비록 결혼 생활이 실질적으로 끝났더라도, 그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마음대로 관계를 청산할 수 없도록 하여 선량한 배우자를 보호하는 데 그 취지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서연의 사례처럼 배우자의 명백한 잘못으로 고통받는 상황에서 상대방이 뻔뻔하게 이혼을 요구해 온다면, 우리 법원은 원칙적으로 그 청구를 기각합니다. 이는 혼인 관계에서 신의를 지킨 배우자를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혹시 지금 비슷한 아픔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시다면, 이 판례가 작은 위로와 힘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본 콘텐츠에 기재된 내용은 실제 판례를 바탕으로 이해를 돕기 위해 각색된 것으로, 실제 법률 자문이 필요할 경우 반드시 변호사 등 법률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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