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님, 그의 병이 모든 걸 용서한다면, 지난 10년간 제 고통과 아이의 상처는 어디서 보상받아야 합니까?"
지킬앤하이드, 약을 끊은 남편이 악마로 변하는 순간
수진(가명, 41세)의 남편, 민준(가명, 43세)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진 남자였습니다. 평소에는 다정하고 유머러스했으며, 2011년에 태어난 사랑스러운 아들의 좋은 아버지였습니다. 수진은 그런 민준을 사랑했고, 2010년 결혼했을 때만 해도 세상의 모든 행복을 다 가진 것 같았죠. 그들의 행복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2017년, 남편이 조울증(양극성 정동장애)과 충동조절장애 진단을 받으면서부터였습니다.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 수진은 절망하기보다 남편을 더 꼭 껴안아 주었습니다. '내가 곁에서 지켜주고 함께 이겨내야지.' 그녀는 남편의 병을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였습니다. 병원에 꼬박꼬박 데려가고, 처방받은 약을 제시간에 챙겨 먹이는 것이 그녀의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되었습니다. 약을 먹는 동안의 민준은 예전처럼 따뜻한 남편이자 아빠였습니다. 문제는, 그가 자신의 상태가 조금만 호전되었다고 느끼면 의사와 상의도 없이 약을 끊어버리는 데 있었습니다.
약물치료를 중단한 남편은 수진이 알던 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발작적으로 분노를 터뜨렸고, 집안의 물건을 부수는 일도 잦아졌습니다. "네가 뭘 안다고 지껄여!", "다 너 때문이야!" 끝을 모르는 배우자 폭언이 수진의 심장을 날카롭게 파고들었습니다. 집은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니었습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껴안고 사는 듯한 불안과 공포가 그녀의 일상을 지배했습니다.
2017년부터 2023년까지, 남편은 총 네 번이나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퇴원할 때마다 그는 눈물로 용서를 빌었고, 다시는 약을 끊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수진은 번번이 속아주었습니다. '이번에는 정말이겠지.' '아이를 위해서라도 가정을 지켜야 해.' 그러나 그 희망은 얼마 가지 않아 산산조각 나기를 반복했습니다. 남편의 병은 부부의 신뢰를 갉아먹는 괴물이었고, 수진은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네 가족 다 죽여버릴 거야" 감시와 협박, 마지막 선을 넘다
2023년 4월, 악몽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퇴원 후 한동안 잠잠하던 남편이 또다시 약을 끊은 것입니다. 이번의 광기는 이전과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는 극심한 불안 증세를 보이며 수진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 들었습니다.
"당장 회사 그만둬! 네가 밖에 싸돌아다니니까 내가 이렇게 아픈 거 아냐?"
그는 수진의 사회생활을 문제 삼으며 직장을 그만두라고 강요했습니다. 수진이 거부하자, 그는 하루에도 수십 통씩 문자 협박을 퍼부었습니다. 그 내용은 차마 입에 담기에도 끔찍했습니다.
"너랑 네 부모, 형제까지 다 죽여버릴 거야. 내가 어떤 놈인지 잊었어?"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수진의 친정 식구들에게까지 연락해 똑같은 내용의 협박을 가했습니다. 수진은 자신의 안전뿐만 아니라 가족의 안위까지 위협받는 상황에 이르자 극심한 공포에 떨었습니다. 집안은 이미 지옥이었습니다. 민준은 수진의 일거수일투족을 의심했고, 그녀를 미행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진은 아들의 휴대전화에서 소름 끼치는 사실을 발견하고야 말았습니다. 남편이 아들의 폰에 녹음 앱을 몰래 설치해 둔 것이었습니다. 그 앱은 수진과 아들의 대화, 수진의 통화 내용까지 모조리 녹음하여 민준에게 전송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믿고 의지해야 할 남편이, 사랑하는 아들을 이용해 자신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수진에게 견딜 수 없는 배신감과 모멸감을 안겨주었습니다.
그 순간, 수진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툭'하고 끊어졌습니다. 더 이상은 안 된다. 이것은 사랑도, 가정도 아니다. 나와 내 아이가 살기 위해서는 이 지옥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2023년 5월, 수진은 아들의 손을 잡고 정든 집을 도망치듯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이혼 소송을 결심했습니다.
법정에서의 엇갈린 주장: 질병인가, 폭력인가
법정에서 수진은 지난 6년간 겪었던 남편의 폭언과 폭력, 협박과 감시 행위를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이 모든 고통을 감내할 수는 없으며, 남편의 유책 행위로 인해 혼인 관계는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파탄에 이르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녀는 이혼과 함께 양육권, 그리고 그동안 받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했습니다.
반면, 남편 민준은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병 때문에 벌어진 일이며, 고의가 아니었다고 항변했습니다. 지금은 꾸준히 치료를 받고 있으며 앞으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아이를 위해서라도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매달렸습니다.
수진의 마음은 단호했습니다. '기회'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그 지옥 같은 삶을 반복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녀에게는 남편의 병을 이해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충격적인 판결: 이혼은 하되, 위자료는 '0원'
⚖️ 그리고 마침내 판결이 나왔습니다.
법원은 수진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재판부는 "두 사람의 혼인관계는 더 이상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탄에 이르렀으며, 그 주된 책임은 남편에게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이혼 청구는 인용되었고, 아들에 대한 친권 및 양육권 역시 엄마인 수진에게 돌아갔습니다. 남편은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매월 120만 원의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가장 첨예했던 재산분할 문제. 부부의 순자산 약 12억 원에 대해 법원은 두 사람의 기여도를 동등하게 보아 50:50으로 분할하라고 결정했습니다. 수진은 남편으로부터 약 5억 8천만 원의 재산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수진이 예상했던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판결문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녀는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습니다.
"원고(수진)의 위자료 청구를 기각한다."
기각. 0원. 법원은 수진이 겪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 책임을 남편에게 물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실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재판부는 남편의 폭언, 협박, 감시 등의 행위가 혼인 파탄의 원인이 된 것은 맞지만, "이는 남편의 정신질환에서 비롯된 증상으로 볼 여지가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그의 행동이 악의적인 의도라기보다는 '질병'의 발현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정신적 손해배상 책임, 즉 위자료 지급 의무를 지우기는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진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이혼은 했지만, 상처는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남편의 병이 그의 모든 폭력과 만행에 대한 면죄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난 10년간 공포에 떨며 살았던 자신의 삶은, 아이의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대체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요? 법이 보호해주지 않는 고통, 재산분할 50%라는 숫자가 과연 그녀가 겪은 지옥에 대한 합당한 대가일까요? 수진은 텅 빈 법정을 나서며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판례 해설
본 이야기는 서울가정법원 2023년 판결을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이 판례는 배우자의 정신질환이 이혼 사유가 될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 정신질환과 이혼 사유: 우리 민법 제840조 제6호는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를 이혼 사유로 규정합니다. 법원은 배우자의 정신질환이 치료가 어렵고, 그로 인해 다른 배우자나 가족 구성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준다면 이를 '중대한 사유'로 인정하여 이혼을 허용합니다.
- 위자료 판단의 맹점: 이 판례의 핵심은 위자료 부분입니다. 법원은 혼인 파탄의 책임이 남편에게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 행위의 원인이 '질병'이라는 점을 들어 위자료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이는 법률상 '유책성'을 따질 때, 가해 행위가 고의나 과실에 의한 것인지를 중요하게 보기 때문입니다. 질병으로 인한 행위는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려워 위자료 청구가 기각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는 피해 배우자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배우자의 정신질환으로 인한 이혼 소송은 법리적으로 매우 복잡하고 섬세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단순한 부부 싸움이 아닌, 질병과 책임의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 이 글은 실제 판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콘텐츠이며,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법률적인 문제나 이혼 소송에 대한 구체적인 상담은 반드시 변호사와 같은 법률 전문가와 진행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