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님, 제 10년은, 아이의 상처는 정말 1500만원짜리밖에 안 되는 건가요?"
두 얼굴의 남편, 술잔에 잠긴 악마
선화(가명)의 남편, 경민(가명)은 술을 마시지 않을 땐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2011년 결혼했을 때만 해도 그는 평범하고 성실한 남자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다정한 얼굴 뒤에는 술이라는 방아쇠로 격발되는 잔인한 폭력성이 숨어 있었습니다. 결혼 생활 10년, 선화에게 집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공포의 공간이었습니다.
모든 불행은 술자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거나하게 취해 들어온 날이면, 경민은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시비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왜 전화를 안 받았어?", "오늘 표정이 왜 그 모양이야?" 그의 말에 대꾸라도 하면 곧바로 고성이 터져 나왔고, 고성은 이내 폭력으로 이어졌습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그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손에 잡히는 물건을 집어 던졌습니다. 선화의 머리를 스쳐 벽에 부딪힌 리모컨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겁에 질려 말을 잇지 못하는 선화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벽으로 밀치는 것은 일상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술이 깬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선화야, 내가 정말 미쳤었나 봐. 다시는 안 그럴게. 한 번만 용서해 줘."
선화는 매번 속아주었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아이가 있으니, 가정을 깨뜨릴 수는 없어.' 그러나 그의 맹세는 늘 하룻밤짜리였습니다. 술잔이 채워지면 악마는 어김없이 깨어났고, 폭력의 수위는 날이 갈수록 높아져만 갔습니다.
아이 앞에서 벌어진 지옥도
선화를 가장 절망하게 만든 것은 자녀 앞에서까지 폭력을 서슴지 않는 남편의 모습이었습니다. 어느 저녁, TV를 보던 아이 앞에서 말다툼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성을 잃은 경민은 선화를 강하게 밀쳤고,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습니다. 아빠의 고함 소리와 엄마의 비명,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 어린아이가 겁에 질려 터뜨린 울음소리가 집안을 가득 메웠습니다.
아이가 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그를 멈추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아이가 공포에 질려 아빠의 바지를 붙잡고 말렸지만, 그는 아이를 뿌리치고 선화에게 폭언을 쏟아부었습니다. 그 순간, 선화는 남편에 대한 마지막 기대마저 버렸습니다. 이 남자는 남편으로서도, 아버지로서도 실격이었습니다.
결국 참다못한 선화가 경찰에 신고한 날, 경민은 폭행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법의 처벌을 받았으니 이제는 달라질 것이라 믿었던 선화의 마지막 희망은 오판이었습니다. 경민은 반성하기는커녕, "네가 어떻게 나를 경찰에 신고해? 가족끼리 그럴 수 있어?"라며 그녀를 배신자 취급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것이 아니라, 법의 처벌을 받은 사실 자체에 분노했습니다. 그날 이후, 그의 폭력은 더 교묘하고 악랄해졌습니다.
"이혼만은 안 돼" 법정에서 보인 그의 위선
2023년 2월, 선화는 아이의 손을 잡고 그 지옥 같던 집을 나왔습니다. 더 이상은 아이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곧바로 가정폭력을 사유로 이혼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정에서 경민은 파렴치한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는 폭행 사실 중 일부는 인정하면서도, "상습적인 폭행은 아니었다", "부부싸움 중 감정이 격해져서 그랬을 뿐"이라며 자신의 행동을 축소했습니다. 심지어 "아내가 나를 무시하고 부모님께 불손하게 굴어 다툼이 시작된 것"이라며 책임의 일부를 선화에게 떠넘기려 했습니다.
가장 기가 막혔던 것은, 그가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가정을 지키고 싶다고 호소한 점입니다. 지난 10년간 아내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아이에게 끔찍한 모습을 보여온 남자가, 이제 와서 가정을 지키고 싶다는 말을 하는 모습은 그저 위선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10년의 고통, 그 가치는 1500만원
⚖️ 기나긴 싸움 끝에 판결이 나왔습니다.
법원은 선화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재판부는 "피고(남편)는 혼인 기간 내내 원고(아내)에게 상습적으로 폭언과 폭행을 행사하였고, 이는 형사처벌까지 받은 사실로 인정된다"며, "혼인 관계 파탄의 주된 책임은 남편에게 있다"고 명백히 밝혔습니다.
법원은 선화의 이혼 청구를 인용했으며, 자녀의 친권자와 양육권자로 선화를 지정했습니다. 재산분할 역시 50:50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했습니다. 선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판결문의 마지막 부분으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바로 그녀가 겪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 위자료 항목이었습니다.
"피고는 원고에게 위자료 15,000,000원을 지급하라."
1500만원. 그 숫자를 본 순간, 선화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해졌습니다. 10년. 3,650일. 술에 취한 남편의 발소리에 심장이 내려앉던 수많은 밤들, 아이 앞에서 겪어야 했던 모멸감과 공포, 온몸에 시퍼렇게 피어났던 멍 자국들. 그 모든 고통과 눈물의 가치가 고작 1500만원이라는 말인가.
법은 남편이 '유책배우자'라고 명확히 선언했지만, 그 책임에 대해 매긴 가격은 너무나도 초라했습니다. 선화는 이혼을 얻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무언가 중요한 것을 패배한 듯한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법정 문을 나서는 그녀의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습니다.
판례 해설
본 이야기는 춘천지방법원 2023년 판결을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이 판례는 상습적인 가정폭력이 명백한 이혼 사유임을 재확인시켜 준 사례입니다.
- 가정폭력과 이혼: 우리 민법 제840조 제3호는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를 이혼 사유로 규정합니다. 상습적인 폭언과 폭행은 이 규정의 대표적인 사례이며, 혼인 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한 주된 책임이 가해 배우자에게 있음을 인정하는 강력한 근거가 됩니다.
- 위자료 산정 기준: 법원은 위자료를 산정할 때 혼인 기간, 파탄의 원인과 책임의 정도, 당사자의 나이와 사회적 지위, 재산 상태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합니다. 이 사건의 경우,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혼인 기간과 형사처벌까지 받은 폭행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1500만원이 선고되었습니다. 이는 피해자가 실제로 겪은 정신적 고통의 크기와 법원이 여러 요소를 고려해 산정하는 금액 사이에 괴리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많은 피해자들이 위자료 액수에 대해 아쉬움이나 억울함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가정폭력은 결코 '집안일'이나 '부부싸움'으로 치부될 수 없는 명백한 범죄이며, 이혼 소송에서 매우 중요한 유책 사유가 됩니다.
※ 이 글은 실제 판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콘텐츠이며,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법률적인 문제나 이혼 소송에 대한 구체적인 상담은 반드시 변호사와 같은 법률 전문가와 진행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