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나도 보고 싶어, 자기야."
새벽 3시, 곤히 잠든 아이들 옆에서 남편의 휴대폰이 작게 울렸다. 잦은 술자리와 외박. 또 회사 동료들과의 술자리겠거니, 피곤에 절어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겠거니. 15년을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그날 밤, 무심코 열어본 남편의 카카오톡 메시지는 내 15년의 믿음과 인내를 산산조각 냈다. 상대는 그의 직장 동료라는 '그 여자'였다.
손이 떨리고 심장이 얼어붙었다. '사랑해'라는 단어가 이렇게 차갑고 잔인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 순간, 지난 15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 청춘, 내 인생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나 홀로 지켜온 텅 빈 집, 그는 '하숙생'이었습니다
2008년, 우리는 풋풋한 사랑을 약속하며 결혼했다. 곧이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이가 태어났다. 나는 아이들의 엄마, 그리고 그의 아내로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가장'이라는 자리에 없었다. 남편에게 집은 그저 잠시 들렀다 가는 '하숙집'과 같았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기본인 술자리, 동이 트고 나서야 비틀거리며 들어오는 날들이 부지기수였다. 어떤 날은 아예 외박을 했다. 처음에는 걱정이 됐고, 다음에는 화가 났고, 나중에는 체념하게 되었다.
“여보, 애들이 아빠만 기다려. 오늘은 좀 일찍 들어오면 안 돼?”
“아, 회사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어. 당신이 애들 좀 잘 챙겨줘.”
가사와 육아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아이가 열이 펄펄 끓어 밤새 응급실을 뛰어다닐 때도, 학부모 상담이 있어 가슴 졸이며 선생님을 만날 때도, 그는 내 곁에 없었다. 나는 독박육아의 터널 속에서 홀로 두 아이를 키워냈다. 그는 그저 가끔 집에 들러 용돈을 주는, 아이들에게조차 어색한 손님일 뿐이었다.
“사랑해, 보고 싶어” 배신의 증거들
2022년 말이 되자, 그의 외박은 더욱 잦아졌다. 뭔가 이상하다는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휴대폰 속에 담긴 진실은 참혹했다. 남편은 직장 동료 C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메시지는 단순한 동료애가 아니었다. 서로를 애칭으로 부르며 사랑을 속삭이고, 함께 여행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지난번 강릉 여행, 너무 좋았어. 다음엔 어디 갈까?”
강릉? 그가 회사 워크숍이라며 집을 비웠던 바로 그 주말이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나를 가장 깊은 절망으로 밀어 넣은 것은 따로 있었다.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가 있던 어느 주말, 그는 상간녀를 우리 집으로 끌어들였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배어있고, 나의 손때가 묻은 소중한 보금자리. 그 신성한 공간이 그들의 밀애 장소로 더럽혀졌다는 사실에 피가 거꾸로 솟았다. 분노와 배신감에 온몸이 떨렸다. 이것은 단순한 외도가 아니었다. 나와 아이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만든 가정을 향한 완벽한 기만이자 능멸이었다.
뻔뻔한 변명, 그리고 시작된 외로운 싸움
모든 증거를 내밀자 남편은 마지못해 시인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진심 어린 사과가 아니었다.
“미안해. 그냥 잠깐 실수였어. 마음이 외로워서 그랬나 봐.”
“그리고 솔직히 우리 사이, 예전부터 문제 많았잖아? 당신도 책임 없어?”
그는 모든 책임을 내게 돌리려 했다. 나의 외로움, 나의 희생은 안중에도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외도를 정당화하며 나를 비난했다.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했다. 며칠 후, 그는 자신의 짐을 챙겨 집을 나갔다. 그렇게 15년의 결혼 생활은 남편의 일방적인 가출로 끝이 났다.
더욱 비참했던 것은 그 후의 일이다. 그는 두 아이의 아빠라는 사실마저 잊은 듯했다. 매달 보내온 양육비는 고작 30만 원. 두 아이의 학원비는커녕 한 달 식비도 안 되는 돈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내 자신을 위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나는 변호사를 찾아가 이 지옥 같은 결혼을 끝내기 위한 이혼 소송을 결심했다.
법정에서의 심판, 정의는 살아있었다
소송 과정은 또 다른 상처였다. 남편은 법정에서 ‘자신은 가정을 지키려 했으나 아내의 성격 차이로 관계가 파탄 났다’는 거짓 주장을 펼쳤다. 상간녀와의 관계도 ‘잠깐의 실수’였다고 축소하기 급급했다.
나는 그가 상간녀와 주고받은 수많은 ‘사랑해’ 메시지, 함께 여행을 다녀온 증거, 그리고 그가 집을 나간 후 아이들의 양육을 철저히 외면한 사실들을 법정에서 하나하나 증명해야 했다. 그 과정은 내 상처를 다시 헤집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판결의 날이 왔다. 재판부는 내 손을 들어주었다.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남편의 책임을 명확히 했다.
- ✔️ 혼인 관계 파탄의 주된 책임은 배우자로서의 신뢰를 저버리고 부정행위를 한 피고(남편)에게 있다.
- ✔️ 피고는 부정행위로 인해 원고(아내)가 입었을 정신적 고통에 대해 위자료 1,500만 원을 지급하라.
- ✔️ 사건본인(두 자녀)의 친권자 및 양육자로 원고를 지정한다.
- ✔️ 피고는 원고에게 자녀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 양육비로 1인당 월 60만 원씩, 총 120만 원을 매달 지급하라.
- ✔️ 부부가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은 원고와 피고가 50:50 비율로 분할한다. (가정주부인 나의 기여도를 50% 인정)
판사의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 억눌렀던 눈물이 쏟아졌다. 이것은 단순히 이혼에서 이겼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법이 나의 고통을, 나의 15년을, 그리고 내가 홀로 지켜온 가정을 인정해 준 것이었다. 남편의 배신에 대한 명백한 ‘죗값’이 내려진 순간이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그의 아내가 아니다. 상처받은 피해자가 아니다. 나는 두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낼, 강인한 엄마다.
📜 판례 해설
이 이야기는 2023년 의정부지방법원의 이혼 판결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이 판례는 이혼 소송의 핵심 쟁점들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재판부는 배우자의 부정행위(외도)를 혼인 관계 파탄의 결정적인 유책 사유로 인정했습니다. 특히 남편이 장기간 가사와 육아를 소홀히 한 점 역시 파탄의 책임으로 보았습니다. 이에 따라 법원은 남편에게 위자료 지급 의무를 부과했으며, 그동안 실질적으로 자녀를 양육해 온 아내를 친권자 및 양육자로 지정하고, 현실적인 양육비 지급을 명령했습니다.
또한, 전업주부라 할지라도 가사 노동과 내조를 통해 재산 형성에 기여한 바를 동등하게 인정하여 재산분할 비율을 50%로 결정한 점은 중요한 시사점입니다.
※ 모든 법률적 문제와 결정은 반드시 전문가인 변호사와의 정식 상담을 통해 진행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