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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소송 44 “너 같은 여자는…” 남편의 20년 가스라이팅, 위자료 3천만 원으로 죗값을 물었습니다

 

“너 같은 여자가 뭘 안다고 나서. 네가 하는 게 뭐가 있어? 입 다물고 가만히 있기나 해.”

그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아침. 20년 만에 처음으로 온전히 나를 위한 고요가 찾아왔다. 어색할 정도로 조용한 작은 방 안에서, 나는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지난 20년의 결혼 생활은 귀에 박힌 저주 같은 말들과, 그 말들이 파고든 상처로 가득한 전쟁터였다. 나는 그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다.

 

사람들은 내게 물었다. 왜 이제 와서, 다 늙어서 이혼을 하냐고. 아이들도 다 컸는데 참고 살지 그랬냐고. 그들은 모른다. 눈에 보이는 상처보다 투명한 말들이 한 사람의 영혼을 어떻게 좀먹고 파괴하는지를. 그리고 그 파괴의 대가를 법정에서 받아내기까지 내가 어떤 결심을 해야 했는지를.

 

사진-여자의 뒷모습
가스라이팅에 의한 혼인 파탄

시작부터 잘못 꿰어진 첫 단추

1999년, 나는 부푼 꿈을 안고 결혼했다. 남편 B는 겉보기에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남자였다. 하지만 신혼의 단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자신만의 규칙과 기준으로 나를 통제하려는 가부장적이고 독선적인 사람이었다. 우리 집의 모든 것은 그의 허락과 결정 아래에 있어야만 했다.

 

그의 지배는 ‘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모든 수입을 혼자 관리했고, 내게는 매달 정해진 생활비만을 건넸다. 나는 그 돈으로 한 달의 살림을 꾸려야 했고, 10원짜리 하나까지 사용처를 보고해야 했다. 마치 회사의 경리 직원이 된 기분이었다. 아이들 학원비나 집안의 큰 지출이 필요할 때면, 나는 그에게 결재를 올리는 부하 직원처럼 그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이 돈으로 살림을 어떻게 꾸리는 거야? 당신은 경제 관념이라는 게 없어?”

그는 늘 이런 식이었다. 부족한 생활비를 주면서도 모든 책임은 살림을 사는 내 몫으로 돌렸다. 나는 죄인이 된 기분으로, 더 아끼고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나는 동등한 동반자가 아닌, 그의 통제하에 있는 하급자일 뿐이었다.

20년간의 언어감옥, 나를 파괴한 말들

경제적 통제보다 더 나를 병들게 한 것은 그의 ‘말’이었다. 그는 나를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비수가 되어 매일같이 내 심장에 박혔다.

내가 어떤 의견을 내면, 그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너 같은 여자가 뭘 알아.”

내가 아이들 교육 문제로 고민을 털어놓으면, 그는 혀를 찼다.
“당신이 뭘 제대로 하는 게 있어? 애들 망치지나 마.”

 

심지어 나의 부모님과 가족까지 헐뜯으며 나를 고립시켰다. 모든 대화의 끝은 나의 잘못으로 귀결되었다.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그것은 내 탓이었고, 그의 기분이 좋지 않은 것마저 나의 책임이었다. 나는 점점 입을 닫았다. 내 생각,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그의 언어는 나를 투명인간으로 만들었다. 나는 그가 만들어 놓은 ‘쓸모없고 무능한 아내’라는 감옥에 갇혀, 서서히 나 자신을 잃어갔다.

황혼의 결심,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보며 버텼다. ‘내가 참으면 가정이 평화롭다’는 낡은 주문을 외우며 수십 년을 견뎠다. 하지만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제 갈 길을 찾아가자, 텅 빈 집에는 그와 나, 그리고 그의 경멸 어린 시선만이 남았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여보, 우리 이제라도 서로 존중하면서 지내면 안 될까요?” 돌아온 것은 여느 때와 같은 냉소와 무시뿐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

 

내 나이 50대. 남들이 보면 새로운 시작을 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였다. 하지만 남은 인생마저 그의 언어 감옥에서 질식하며 살 수는 없었다. 이것은 내 마지막 존엄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나는 이혼 소송 서류를 준비했다. 내 이름 석 자를 되찾기 위한, 길고 외로운 싸움의 시작이었다.

법정에서 증명된 나의 고통

역시나 남편은 법정에서 모든 것을 부인했다. 자신의 폭언은 부부 사이에 흔히 있을 수 있는 다툼일 뿐이었고, 자신은 가장으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히려 나를 예민하고 까다로운 사람으로 몰아갔다.

 

나는 지난 20년간 그가 내뱉었던 말들을, 그가 나를 통제했던 방식들을,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느꼈던 절망과 고통을 담담히 증언했다. 눈에 보이는 증거는 없었다. 멍들거나 찢어진 상처는 없었지만, 내 영혼은 이미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과연 재판부가 이 보이지 않는 상처를 인정해 줄까, 두려웠다.

 

그리고 마침내,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내 손을 들어주었다.

법원은 판결문에 이렇게 적시했다.

  • ✔️ 피고(남편)는 혼인 기간 내내 원고(아내)에게 “너 같은 여자” 등 경멸적인 표현을 일삼으며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언행을 반복했다.
  • ✔️ 이러한 장기간의 정서적 학대는 부부 관계의 기본적인 신뢰를 파괴하는 행위이며, 혼인 관계를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한다.
  • ✔️ 따라서 혼인 파탄의 책임은 전적으로 피고에게 있으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로 3,000만 원을 지급하라.
  • ✔️ 약 11억 8천만 원 상당의 공동 재산은, 20여 년간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며 재산 형성에 기여한 원고의 노력을 인정하여 50:50 비율로 분할한다.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법이 나의 고통을 ‘사실’로 인정해 준 것이다. 위자료 3천만 원은 돈 이상의 의미였다. 그것은 내 잃어버린 20년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이자, 그의 죗값에 대한 법적인 낙인이었다. 재산의 절반은 내가 한평생 바친 노동의 가치를 동등하게 인정받은 증표였다. 나는 이겼다.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존엄을 위해서.


📜 판례 해설

이 이야기는 2020년 서울가정법원의 황혼이혼 판결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이 판례는 현대 사회에서 이혼 사유의 의미를 넓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재판부는 신체적 폭력과 같은 명백한 유책 사유뿐만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언어폭력, 인격 모독, 경제적 통제와 같은 ‘정서적 학대(가스라이팅)’ 역시 혼인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 명백한 이혼 사유(민법 제840조 제6호)에 해당한다고 명시했습니다.

 

특히 수십 년간 가사와 육아에 헌신한 전업주부의 기여도를 남편과 동등한 50%로 인정하여 재산분할을 명한 것은, 가사노동의 사회경제적 가치를 법적으로 인정한 중요한 판결입니다. 더 이상 ‘참고 사는 것’이 미덕이 아니며, 정신적 폭력으로부터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이혼 청구가 정당한 권리임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 모든 법률적 문제와 결정은 반드시 전문가인 변호사와의 정식 상담을 통해 진행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