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영정 사진 앞에서, 저는 차라리 꿈이었기를 기도했습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예비 신랑이었던 내 아들. 턱시도를 입고 환하게 웃어야 할 그날, 아들은 싸늘한 한 줌의 재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결혼식을 불과 나흘 앞두고 날아온 예비 며느리의 일방적인 파혼 통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그깟 실수가 제 아들의 목숨을 앗아갈 만큼 큰 죄였는지, 그리고 아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 그 여자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는 것인지,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법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 가장 행복했던 날들, 결혼 준비
제 아들 C와 예비 며느리 B는 참 예쁜 한 쌍이었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졌고,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제 마음이 다 흐뭇했습니다. 아들은 평생의 짝을 만났다며 아이처럼 기뻐했고, 저는 그런 아들의 모습에 더 바랄 것이 없었습니다.
결혼 날짜는 2022년 10월 29일로 잡혔습니다. 두 아이는 함께 웨딩 사진을 찍고, 양가 부모님과 함께 정성껏 청첩장을 접어 소중한 분들께 보냈습니다. 아담한 신혼집을 구해 함께 가구를 들여놓고, 알콩달콩 미래를 설계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제 모든 것을 다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내 아들도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겠구나.’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 벅찬 나날이었습니다.
결혼식 날짜는 하루하루 다가왔고, 우리 가족의 행복은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듯했습니다. 그 누구도, 바로 그 길의 끝에 끔찍한 비극의 절벽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결혼 나흘 전, 모든 것을 바꾼 파혼 통보
결혼식을 일주일 앞둔 10월 22일. 아들은 총각 시절의 마지막을 친구들과 함께 보낸다며 늦게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철없는 아들은 그날, 해서는 안 될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바로 유흥주점에 출입한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알았는지, 예비 며느리 B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10월 25일 화요일. 결혼식을 불과 나흘 앞둔 그날이었습니다. B는 제 아들에게 전화해 차갑게 말했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이랑 결혼 못 해. 이 결혼, 없던 걸로 합시다.”
아들에게 전화를 받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 B가… 결혼 안 한대….” 아들은 전화기 너머로 절규하며 울부짖었습니다. 저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B에게 수십 번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습니다. 무슨 오해가 있었을 것이라, 만나서 이야기하면 풀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제 아들의 잘못이 컸습니다. 용서받지 못할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실수로, 평생을 약속한 결혼을 이렇게 하루아침에 내팽개칠 수 있는 것인지,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멈춰버린 시간, 아들의 마지막 선택
그날 이후, 아들은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폐인처럼 변해갔습니다. 저는 문밖에서 “아들아, 제발 문 좀 열어봐. 엄마랑 얘기 좀 하자. 다 해결할 수 있어”라고 애원했지만, 방문은 굳게 닫힌 채였습니다. 그 짧은 며칠이 몇 년처럼 길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10월 26일. 파혼 통보를 받은 지 단 하루 만이었습니다. 아들은 끝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방 안에서 싸늘하게 식어가는 아들을 발견했을 때, 제 세상도 함께 멈추었습니다. 아들의 손에는 B에게 보내려다 만, 용서를 구하는 편지가 들려 있었습니다.
결혼식이 열렸어야 할 10월 29일, 우리는 웨딩홀이 아닌 장례식장에서 아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야 했습니다. 하객들을 맞아야 할 자리에서 조문객을 맞았고, 축의금 대신 부의금을 받았습니다. 제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졌습니다.
법정에서의 눈물, “내 아들을 돌려내라”
시간이 흘러도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슬픔은 분노가 되어 심장을 들끓게 했습니다. 저는 B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시작은 제 아들의 잘못이었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그렇게 매몰차게, 일방적으로 파혼을 통보하고 모든 연락을 끊어버린 B의 행동이 제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B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아들을 잃은 제 정신적 고통에 대해 3천만 원의 위자료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돈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법정에서나마 그녀의 행동에 책임이 있음을, 그녀의 모진 결정이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음을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법정의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법의 냉정한 저울, 누구의 책임인가
재판에서 저는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저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판결문을 읽는 내내, 저는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법원은 판결문에 이렇게 썼습니다.
- ✔️ 망인(아들 C)이 결혼을 일주일 앞두고 유흥주점에 출입한 행위는 혼인의 기초가 되는 신뢰를 깨뜨리는 부정행위에 해당한다.
- ✔️ 따라서 혼인 관계 파탄의 주된 책임은 망인에게 있으므로, 피고(예비 신부 B)가 파혼을 결심한 것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
- ✔️ 피고의 파혼 통보는 정당한 권리 행사이며, 그 자체를 불법행위라고 볼 수 없다.
- ✔️ 망인이 사망에 이른 것은 안타까운 일이나, 이는 파혼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 상태에서 스스로 내린 결정일 뿐, 피고의 파혼 통보 행위와 사망 사이에 법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B에게는 아무런 법적 책임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의 잘못이 파혼의 ‘원인’이었고, B의 파혼 통보는 ‘정당한 결과’였으며, 아들의 죽음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닌 ‘개인의 선택’이라는 것. 법의 논리는 명확했지만, 자식을 가슴에 묻은 어미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언어였습니다. 저는 법정에서 또 한 번 아들을 잃었습니다.
📜 판례 해설
본 이야기는 2023년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의 손해배상 청구 기각 판결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이 판례는 약혼 또는 사실혼 관계 파기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의 법리를 다루는 매우 비극적이고 중요한 사건입니다. 법원은 우선 혼인 관계 파탄의 원인을 제공한 ‘유책 당사자’가 누구인지를 판단합니다. 이 사건에서는 결혼을 앞두고 유흥주점에 출입한 망인(아들)에게 주된 책임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인과관계’입니다. 즉, 피고의 행위(파혼 통보)가 원고의 손해(아들의 사망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를 발생시킨 직접적인 원인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우리 법원은 일반적으로 정당한 사유에 의한 파혼 통보 자체를 불법행위로 보지 않으며, 그로 인해 상대방이 극단적 선택을 하더라도 이는 통상적으로 예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특별한 손해로 봅니다. 따라서 파혼 통보와 사망 사이에 직접적인 법률상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비록 도의적인 비난은 가능할지라도, 법적인 책임을 묻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판결입니다.
※ 모든 법률적 문제와 결정은 반드시 전문가인 변호사와의 정식 상담을 통해 진행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