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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소송 49 ☀️30년간 그림자 취급한 남편, 황혼이혼으로 제 몫 11억을 되찾았습니다

 

“여보, 나 아파서 오늘 저녁은 좀 힘들 것 같아.”
“…….”
“내 말 듣고 있어?”
“그래서. 밥은?”

 

열이 펄펄 끓어 누워있는 아내에게 그가 던진 첫마디는 ‘밥’이었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지난 30년간, 나는 이 집에서 아내가 아니라 식사를 준비하고 집을 관리하는 가사도우미였구나. 이름조차 없이, 그림자처럼 살아왔구나. 아이들이 다 자라 둥지를 떠나고, 텅 빈 집안에 그와 단둘이 남게 되었을 때, 저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제 인생의 마지막 장은 ‘나’ 자신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사진-빛바랜 사진
빛바랜 사진

 

이것은 30년간의 결혼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법정에서 나의 잃어버린 이름과 인생의 몫 11억 5천만 원을 되찾기까지의 길고 외로웠던 싸움에 대한 기록입니다.

빛바랜 사진 속, 서툴렀던 시작

1991년, 우리는 결혼했습니다. 앨범 속의 앳된 우리는 수줍게 웃고 있었습니다. 남편 B는 과묵했지만 책임감 강한 사람이었고, 저는 헌신적인 아내이자 좋은 엄마가 되어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저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난 30년간 제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저는 온전히 육아와 가사에 전념했습니다. 그는 밖에서 돈을 벌었고, 저는 안에서 살림을 했습니다. 그것이 당연한 역할 분담이라 생각했습니다. 남편의 성공을 위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나의 이름과 나의 꿈은 기꺼이 뒤로 미뤘습니다. 하지만 그는 저의 헌신을 당연하게 여겼고, 당연함은 이내 무시와 무관심으로 변해갔습니다.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30년

우리 집 저녁 식탁은 언제나 고요했습니다. 저는 하루 동안 있었던 소소한 일들을 나누고 싶었지만, 그는 늘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제 말에 건성으로 답하거나, 아예 대꾸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대화는 그가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제가 복종하는 형식으로만 존재했습니다.

“이리 와 봐. 저기 못 좀 박아.”
“내일 아침 셔츠 다려 놔.”

 

그에게 저는 동등한 인격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집안의 왕이었고, 저는 그의 지시를 수행하는 신하였습니다. 아이들 문제, 재산 문제 등 집안의 중요한 결정에서 제 의견이 반영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제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면, 그는 “당신이 뭘 아냐”는 듯 무시하기 일쑤였습니다.

 

가장 비참했던 것은 제가 아팠던 날의 기억입니다. 독감으로 며칠을 앓아누워 있을 때, 그는 단 한 번도 제 이마를 짚어주거나, 괜찮냐고 물어오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신의 식사와 옷가지를 챙기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만을 토로했습니다. 그의 차가운 무관심 속에서 저는 30년간 정서적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의 아내가 아닌, 이 집의 가구이거나, 혹은 그림자일 뿐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떠난 빈 둥지, 나의 결심

아이들은 제 삶의 이유이자 버팀목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장성하여 각자의 삶을 찾아 집을 떠나자, 거대한 집에는 숨 막히는 침묵만이 남았습니다. 그 침묵 속에서 저는 비로소 제 자신을 마주 보게 되었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낯선 중년의 여자. ‘나는 누구인가?’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었습니다. 남은 인생마저 이름 없는 그림자로 살다 죽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2021년, 저는 30년간 살아온 그 집을 내 발로 걸어 나왔습니다. 제 손에는 작은 가방 하나만 들려 있었습니다. 두려웠지만, 그보다 더 큰 해방감이 밀려왔습니다.

법정에서 마주한 그의 뻔뻔함

저의 이혼 요구에 남편은 길길이 날뛰었습니다. 그는 제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멀쩡한 가정을 파탄 내고 있다고 저를 비난했습니다. 심지어 저를 상대로 이혼해달라는 반소까지 제기했습니다.

 

법정에서 그는 태연하게 주장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저는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아내가 일방적으로 집을 나간 것입니다. 이혼의 책임은 아내에게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실소마저 터져 나왔습니다. 그는 정말로 모르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지난 30년간 아내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 그의 무관심과 독선적인 태도가 한 사람의 영혼을 어떻게 짓밟아왔는지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세계에 갇혀, 저의 고통을 단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법정에서 30년의 세월을 증언해야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상처를, 소리 없는 학대를 증명해야 하는 외로운 싸움이었습니다.

판결, 내 30년의 가치를 인정받다

길고 긴 싸움 끝에, 법원은 저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재판부는 남편의 주장을 모두 배척하고, 혼인 파탄의 주된 책임이 그에게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판결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 ✔️ 피고(남편)는 혼인 기간 내내 독선적이고 권위적인 태도로 원고(아내)를 대했으며, 원고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의사소통을 해왔다.
  • ✔️ 원고가 아플 때에도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등, 배우자로서의 기본적인 존중과 배려의 의무를 소홀히 하였다.
  • ✔️ 이러한 장기간의 정서적 교류 단절과 무시는 혼인의 본질을 훼손하는 행위이며, 혼인 관계를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에 이르게 한 책임은 피고에게 있다.
  • ✔️ 피고는 원고에게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로 1,000만 원을 지급하라.
  • ✔️ 약 23억 원에 이르는 부부 공동 재산은, 30년간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며 재산의 유지 및 형성에 기여한 원고의 노력을 동등하게 인정하여 50:50으로 분할한다.

‘재산분할 50%’. 그 문장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법이 저의 30년을, 저의 보이지 않았던 노동의 가치를 인정해 준 것입니다. 11억 5천만 원이라는 돈은 단순한 재산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잃어버렸던 제 인생의 절반이었습니다. 저는 드디어 그림자에서 벗어나, 당당한 제 이름과 제 몫을 되찾았습니다.


📜 판례 해설

본 이야기는 2022년 수원가정법원 안양지원의 황혼이혼 판결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이 판례는 오랜 혼인 기간을 거친 ‘황혼이혼’의 핵심적인 쟁점을 잘 보여줍니다. 재판부는 폭행이나 외도와 같은 명백한 사건이 없더라도, 장기간에 걸친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태도, 소통의 단절, 배우자에 대한 정서적 무관심과 무시가 혼인 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한 중대한 유책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명확히 판단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재산분할’ 비율입니다. 법원은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전업주부로서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고, 배우자의 사회 활동을 내조한 아내의 기여도를 남편과 동등한 50%로 인정했습니다. 이는 가사노동이 부부 공동 재산의 형성과 유지에 얼마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지를 법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황혼이혼 시 재산분할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의미 있는 판결입니다.


※ 모든 법률적 문제와 결정은 반드시 전문가인 변호사와의 정식 상담을 통해 진행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