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에게 위자료 2,000만 원을 지급하라.’ 거기까지는 제 승리였습니다. 하지만 이어진 판사님의 말에 저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원고는 피고에게 재산분할로 2억 2,750만 원을 지급하라.’ ...제가요? 바람을 피워 가정을 파탄 낸 저 남자에게, 제 돈으로 2억이 넘는 돈을 주라고요? 이건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잔인한 형태의 패배였죠."
남편이 초등학교 동창과 모텔에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을 때, 제 12년 결혼 생활은 끝났습니다. 저는 명백한 피해자였고, 이혼 소송에서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실제로 제 손을 들어주었고, 남편의 부정행위를 인정하며 제게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판결문에는 상상도 못 한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제가, 피해자인 제가, 가해자인 남편에게 재산분할로 2억 2,750만 원을 지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막히고 억울한 이야기는, 법의 '정의'가 때로는 얼마나 우리의 상식과 다를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프롤로그: 승소, 그리고 2억 3천만 원짜리 패배
2019년 6월 28일, 법정에 선 저는 담담했습니다. 남편의 외도는 이미 명백하게 입증되었고, 이제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판사님이 판결문을 읽기 시작했을 때, 저는 속으로 '정의는 살아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피고(남편)는 원고(나)에게 위자료 2,000만 원을 지급하라."
그래, 당연한 결과였다. 2천만 원이라는 돈이 제 상처를 모두 보상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잘못을 법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니까요. 짧은 만족감이 저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그 만족감은 판결의 다음 문장에 산산조각 났습니다.
"원고(나)는 피고(남편)에게 재산분할로 2억 2,750만 원을 지급하라."
순간 법정이 웅성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잘못 들은 건가요? 피해자인 내가, 가해자인 남편에게, 2억 3천만 원에 가까운 돈을 주라니요. 머릿속이 하얘지고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위자료로 2천만 원을 받고, 재산분할로 2억 3천만 원을 주라니, 결국 제가 남편에게 2억이 넘는 돈을 쥐여주고 이혼을 '사야' 하는 셈이었습니다. 그의 배신에 대한 대가가 고작 이것이라니. 저는 법정의 판결에 완전히 농락당한 기분이었습니다.
모텔 들어가는 남편, 내 결혼의 종말
2006년, 저는 장래가 촉망되는 한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아이는 없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응원하며 나름대로 평온한 가정을 꾸려왔습니다. 저는 결혼 전부터 악착같이 일했고, 재테크에도 밝아 상당한 재산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남편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안정적이었지만, 그게 우리 관계에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이 아내의 역할이라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깨진 것은 2017년 11월의 어느 쌀쌀한 날이었습니다. 친구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너 혹시... 남편한테 무슨 일 있어? 방금 네 남편이 어떤 여자랑 모텔에 들어가는 걸 봤는데..." 친구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니라고, 잘못 본 것일 거라고 소리쳤지만, 심장은 이미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집에 들어온 남편에게 사실을 추궁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발뺌하다가, 제가 모텔의 위치와 시간을 정확히 대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상대는 그의 초등학교 동창이었습니다. 더 이상 변명을 들을 가치도 없었습니다.
"나가. 당장 내 집에서 나가!"
저는 그의 짐을 현관 밖으로 던져버렸습니다. 배신감에 치가 떨렸습니다. 제 노력과 헌신으로 이룬 이 가정에, 어떻게 감히 다른 여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지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12년 결혼 생활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습니다.
법정에서의 짧은 승리, 그리고 이어진 충격
이혼 소송을 준비하며 변호사에게 물었습니다. "남편의 잘못이 명백하니, 재산은 한 푼도 줄 수 없겠죠?" 변호사는 난처한 표정으로 답했습니다. "사모님, 위자료와 재산분할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입니다."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위자료는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는 '유책배우자'가 상대방의 정신적 고통에 대해 배상하는 것이고, 재산분할은 이혼과 상관없이 혼인 기간 동안 두 사람이 함께 이룬 재산을 각자의 기여도에 따라 나누는 절차라는 것을요. 남편의 외도 사실은 위자료 액수를 정할 때는 영향을 미치지만, 재산을 나눌 때는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법이 그렇게 비상식적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상식적으로 바람을 피워 가정을 망친 사람에게 어떻게 재산을 나눠줄 수 있단 말인가. 분명 법정에서는 제 억울한 사정을 헤아려 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재판은 예상대로 흘러갔습니다. 남편의 외도 사실은 명백하게 인정되었습니다. 법원은 그의 부정행위가 혼인 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한 주된 원인이라고 판시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제게 2,0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저는 잠시나마 정의가 구현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재산분할 판결로 인해 완전히 짓밟혔습니다.
내 돈으로 저 남자의 배신을 보상하라고?
법원은 저희 부부의 공동 재산을 산정한 뒤, 각자의 기여도를 따졌습니다. 결혼 기간이 12년이 넘었고, 남편 역시 가사에 기여하고 저의 사회 활동을 외조한 점 등이 인정되었습니다. 제가 이룬 재산의 상당 부분이 혼인 기간 중에 형성되었다는 이유로, 그 재산에 대한 남편의 기여도가 인정된 것입니다.
그 결과, 저는 제가 가진 재산의 일부를 남편에게 떼어주어야 했습니다. 그 액수가 무려 2억 2,750만 원이었습니다.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제가 밤낮으로 일하고 아껴서 모은 돈, 제 청춘과 노력이 담긴 그 돈을, 저를 배신한 남자에게 제 손으로 건네주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입니다.
이것은 법이 내린 가장 잔인한 형벌이었습니다. 위자료 2,000만 원은 이 거대한 재산분할 액수 앞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숫자놀음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남편의 배신을 법적으로 응징하려다, 오히려 그의 배신을 제 돈으로 보상해 주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법이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지 않을까요? 억울함에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습니다.
판례 해설: 위자료와 재산분할, 너무나 다른 두 개의 저울
이 이야기는 수원지방법원 2018 판결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이 판결은 이혼 소송 당사자들이 가장 많이 혼동하고 억울해하는 부분인 '위자료'와 '재산분할'의 개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 💔 위자료: '잘못'에 대한 처벌
위자료는 혼인을 파탄에 이르게 한 책임이 있는 사람(유책배우자)이 상대방 배우자가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해 배상하는 '손해배상금'입니다. 따라서 배우자의 부정행위, 폭력 등 유책 사유가 인정될 때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남편의 부정행위를 인정했기에, 아내에게 2,0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것입니다. - 🤝 재산분할: '기여'에 대한 정산
재산분할은 누가 잘못했는지를 따지는 제도가 아닙니다. 혼인 기간 동안 부부가 공동으로 협력하여 모은 재산을 이혼 시 각자의 기여도에 따라 나누는 '공동사업 정산'의 개념입니다. 여기서 '기여'는 단순히 돈을 버는 것뿐만 아니라, 가사 노동, 육아, 내조 등도 모두 포함됩니다. 따라서 배우자가 외도를 했더라도, 혼인 기간 동안 재산 형성에 기여한 부분이 있다면 그만큼의 재산을 분할받을 권리가 법적으로 인정됩니다. - ⚖️ 판례의 의의와 시사점
이 판결은 많은 사람들의 법 감정과 실제 법 적용 사이에 큰 간극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바람피운 배우자에게는 재산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생각은 감정적으로는 타당할지 몰라도, 법적으로는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법원은 '잘못의 문제(위자료)'와 '기여의 문제(재산분할)'를 철저히 분리하여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부부 중 한쪽의 소득이나 재산이 월등히 많은 경우, 이혼 시 유책배우자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거액의 재산분할을 해줘야 하는, 이야기 속 주인공과 같은 억울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혼을 고려하고 있다면, 이 두 가지 제도의 차이점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법률적인 문제나 소송과 관련된 구체적인 상담은 반드시 전문 변호사와 진행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