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친정 가 있는 동안, 네 남편 집에 웬 여자가 드나들던데.’ 이웃의 그 한마디에, 갓 낳은 아기를 안고 있던 제 몸이 얼어붙었습니다. 제가 제 몸을 추스르며 아기를 돌보는 그 신성한 시간에, 남편은 우리의 보금자리에 다른 여자를 들였던 겁니다. 그 상처를 가슴에 묻고 10년을 살았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요. 그런데 법은 제게 '너무 오래 참았다'고 말합니다."
한 여성이 엄마가 되는 가장 신성하고도 취약한 시간, 남편은 그 시간을 배신으로 물들였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위해, 가정을 지키기 위해 그 끔찍한 기억을 10년 넘게 가슴에 묻고 살았습니다. 마침내 용기를 내 이혼 소송을 제기했을 때, 법원은 남편의 잘못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제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너무 오래 참았다는 것. 이것은 아이들을 위해 인내했던 한 엄마의 희생이 어떻게 법의 족쇄가 되어 돌아왔는지에 대한 피맺힌 이야기입니다.
프롤로그: 아이를 위해 10년을 참았는데, 법은 제 편이 아니었습니다
판결문을 받아들고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짧고 건조한 그 문장이 제 지난 10년의 인내를, 그리고 앞으로의 제 삶을 한순간에 부정하고 있었습니다. 믿을 수 없었습니다. 판사님은 분명히 인정했습니다. 제가 첫 아이를 낳고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할 때, 남편이 다른 여자를 집에 들인 사실을 말입니다. 그런데 이혼은 안 된다니요.
법의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10년이 훌쩍 지나 '제척기간'이 지났다는 것입니다. 고통의 유효기간이라도 있다는 말인가요? 10년 전의 상처는 이제 상처도 아니라는 말인가요? 아이들에게 아빠 있는 가정을 만들어주기 위해, 제 피눈물을 삼키며 버텨온 세월이 저를 '이혼할 자격도 없는 여자'로 만들었습니다. 법정의 차가운 벽 앞에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때로는 용서와 인내가 가장 큰 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요.
가장 신성한 시간, 가장 잔인한 배신
2004년, 우리는 결혼을 했고 곧 첫 아이가 생겼습니다. 저는 출산 후 몸을 돌보기 위해 잠시 친정에 머물렀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축복이자 선물을 품에 안고, 몸은 고됐지만 마음만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남편이 혼자 지낼 집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는 "걱정 말고 몸조리나 잘하라"며 저를 안심시켰습니다.
제가 친정에 머문 지 2주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옆집 아주머니에게서 조심스러운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새댁, 혹시 남편한테 여동생이 있었나? 웬 젊은 여자가 집에 드나드는 것 같아서...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아기를 안고 있던 팔의 힘이 쭉 빠졌습니다. 설마, 아닐 거야. 결혼 초부터 가끔 걸려오던 모르는 여자의 전화, 의미를 알 수 없던 문자 메시지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애써 고개를 저었습니다.
하지만 의심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저는 결국 친정 부모님께는 비밀로 하고, 밤늦게 저희 집 아파트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보고야 말았습니다. 거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두 개의 그림자. 제 남편, 그리고 낯선 여자. 두 사람이 와인을 마시며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본 순간, 제 세상은 무너졌습니다. 제가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밤을 새우는 동안, 남편은 우리의 신혼집에 다른 여자를 들여 파티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배신감에 숨이 막혀왔습니다.
가슴에 대못을 박고 시작된 결혼 생활
다음 날, 저는 남편을 추궁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친구라고 둘러대다, 제가 본 것을 이야기하자 마지못해 잘못을 시인했습니다. "한 번의 실수였어. 다시는 안 그럴게. 제발 용서해 줘." 그는 엎드려 빌었습니다. 제 마음은 지옥이었습니다. 당장이라도 이혼 서류를 집어던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제 품에는 갓 태어난 아이가 있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이 아이를 아빠 없는 아이로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내가 참으면... 내가 눈감아주면, 이 가정은 지킬 수 있겠지. 남편도 아빠가 되었으니 이제는 달라질 거야.' 저는 그렇게 스스로를 세뇌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가슴에 지워지지 않을 대못을 박은 채, 결혼 생활을 이어가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상처는 결코 아물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모든 행동이 의심스러웠고, 저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습니다. 부부 관계는 형식만 남았고, 저는 오직 '아이들의 엄마'라는 역할로만 버텼습니다.
10년의 세월, 곪아 터진 상처
시간이 흘러 둘째 아이도 태어났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보며 행복을 느꼈지만, 남편에 대한 원망과 상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계속 곪아가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평범한 가정처럼 보였지만, 집안에는 늘 차가운 공기가 흘렀습니다.
1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후, 아이들도 어느덧 훌쩍 자랐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아이들을 위해'라는 핑계 뒤에 숨을 수 없었습니다. 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웃음을 잃고, 남편을 의심하며, 불행한 결혼 생활을 꾸역꾸역 이어가는 제 모습이 너무나도 비참했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10년 넘게 묵혀두었던 그날의 이야기를 꺼내며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남편은 "이미 다 지난 일을 왜 다시 꺼내냐"며 "나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적반하장으로 나왔습니다. 그의 뻔뻔한 태도에 저는 마지막 남은 기대마저 접었습니다. 그리고 법의 힘을 빌려서라도 이 끔찍한 관계를 끝내기로 결심했습니다.
법정의 벽: 당신의 고통은 유효기간이 지났습니다
저는 법정에서 10년 전 그날의 일을 증언했습니다. 그날의 충격과 배신감, 그리고 아이들 때문에 참고 살아야 했던 제 고통을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판사님은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었고, 남편이 산후조리 기간 중 다른 여자를 집에 데려온 사실 자체는 인정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드디어 제 고통을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습니다.
하지만 판결은 냉혹했습니다.
"원고가 주장하는 부정행위는 그로부터 10년 이상 경과하여, 부정행위를 원인으로 한 이혼청구권은 제척기간의 도과로 소멸하였다."
법은 제 상처에 '유효기간'을 매겼습니다. 부정행위를 안 날로부터 6개월, 그 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2년이 지나면, 더 이상 그 잘못을 이유로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이혼 사유(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 등)를 주장했지만, 법원은 "원고와 피고가 그 이후 10년 이상 별다른 문제 없이 혼인 생활을 유지해 온 점"을 들어 그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인내했던 그 시간이, 오히려 제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법은 제게 '당신이 10년이나 참고 살았다는 것은, 그 결혼이 파탄 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저의 이혼 청구는 모두 기각되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저를 배신했던 남자와 '법적인 부부'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10년간 가정을 지킨 대가였습니다.
판례 해설: '인내의 역설', 제척기간의 냉혹함
이 이야기는 부산가정법원 2016 판결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이 판결은 이혼 사유의 '제척기간'이 실제 이혼 소송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냉혹하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 ⏰ 부정행위 이혼 청구의 '유효기간', 제척기간: 우리 민법(제841조)은 배우자의 부정행위를 이유로 이혼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기간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습니다. ① 그 잘못을 안 날로부터 6개월, ② 그 잘못이 있은 날로부터 2년. 이 두 기간 중 하나라도 지나면, 설령 배우자의 외도가 명백한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직접적인 이혼 사유로 삼을 수 없습니다. 법원은 과거의 잘못을 무한정 문제 삼아 가정의 안정을 해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러한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 💔 '참고 사는 것'의 법적 의미: 이 사건의 가장 큰 비극은, 법원이 '10년 이상 문제없이 혼인 생활을 유지했다'는 점을 들어 현재의 혼인 관계가 파탄 나지 않았다고 판단한 부분입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자녀를 위해 고통을 감내한 것이지만, 법원의 시각에서는 '혼인 관계를 지속할 의사가 있었던 것(용서 또는 묵인)'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는 피해자에게 '문제를 즉시 제기하지 않으면 권리를 잃을 수 있다'는 가혹한 선택을 강요하는 것과 같습니다.
- ⚖️ 판례의 시사점: 이 판결은 자녀, 경제적 문제 등 여러 이유로 배우자의 잘못을 참고 넘어가는 많은 분들에게 중요한 경고를 던집니다. 용서와 인내는 미덕일 수 있지만, 법의 세계에서는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행위로 해석될 위험이 있습니다. 배우자의 유책 사유로 이혼을 고려한다면, 감정적인 고통이 크더라도 정해진 제척기간 내에 법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상처뿐만 아니라, 그 상처를 치유할 법적 권리마저 잃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률적인 문제나 소송과 관련된 구체적인 상담은 반드시 전문 변호사와 진행하시기 바랍니다.